1월 둘째주 설교, "믿음으로 한 의" (롬 4:1-12)

믿음으로 한 의

 

세상에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그 믿음은 각기 다릅니다. 또한 세상사람들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성공하게 해주고 잘 사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삽니다. 어떤 종교나 사상을 가졌던지간에 최선의 삶을 사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로마서 4장 전반부 설교는 ‘믿음으로 한 의’ 라고 제목지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그것이 나의 삶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과 상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선택은 “믿음의 선택” 입니다. 그 믿음에 의해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결정하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결정지으면, 이어서 우리는 반드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삶의 실재가 아니면, 그것은 지식으로 믿는것입니다. “삶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인지 지난주 우리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614가지의 율법 전체를 완전히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즉 믿음인데,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지난시간 배웠습니다. 육신을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이 뜻대로 살 수 없기때문에, 하나님이 한 의를 내어주셨습니다. 그 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행하셨습니다. 게다가 순종과 동시에 ‘죄를 범하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율법의 까지도 행하셨습니다. 그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현재 우리의 육신을 살아있는데, 죽을 수는 없으니, 날마다의 삶에서 믿음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내가 매일 죽는것, 즉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흉악하기 짝이없는 원수들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은, 율법을 모두 다 이루시고, 목숨까지 내어드렸습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셔서 그분이 이루어 놓은 ‘의’를, 나의 ‘의’로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의를 나의 의로 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혼인잔치의 비유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라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러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잔치에 참석하는 자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예복을 입지 않고 자기 자신의 옷을 입고 잔치에 참석한 자, 즉, ‘어린양의 가죽옷’, ‘의(義)’의 ‘의(衣)’를 입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를 입은자들은 결박하여 어두운 곳, 즉 지옥에 가둬지게 된다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려면, 나의 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를 나의 것으로 삼아야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나의 의로 삼기 위해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입고있는 옷이 얼마나 추하고 더럽고 허망한가를 깨닫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을 경험하라고, 또한 ‘나의’ 사랑이 얼마나 웃기는 사랑인가, ‘나의’ 판단이 얼마나 우스운 판단인가를 깨닿도록 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땅위에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자신이 옳다고 하며 살고있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사랑, 인내, 동정은 다 자기 중심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인간이 가지고있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추한것인가 깨닿는 것이 삶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열심히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들어 간디, 테레사 수녀같은 이들은 자기 스스로 무언가 하려고, 자기의 의에 하나님의 의를 갖다붙여서, 많은 희생을 하고 평화를 위해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평화는 예수가 없는 평화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의를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삶’을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 입니다. 나를 깨달았으면,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사는 것 입니다. 그분이 베푸신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떤 것 보다도 더 값진 예수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론상으로만 예수를 섬기고 지식으로 예수를 믿으면, 예수가 소중한지 모릅니다. 

 

로마서 1장에서 16장 까지 바울은, 수없이 반복해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면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 예수를 알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삶을 보여주신 나의 구세주 그리스도” 이십니다. 본보기 이십니다. 우리같은 사람을 위해 죽으시고 우리들의 가장 더러운 발까지 씻기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을 그분에게서 보았습니다. 그 주님, 그 사랑, 바로 그 모습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소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아파하는 곳에 나를 보내주소서” 기도합니다.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당신 대신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내 안의 주님이 나를 위해 위대한 사랑을 보내주신 것을 알면,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패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셀 수 없이 왔다갔다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곧 제가 하나님 앞에 설때, 그 때 저를 알아주세요.” 기도합니다.

 


[참고] 설교 요점정리 자료

롬4장 믿음으로 이룬 한 의 

(4:1-12)

 

롬4장 믿음으로 이룬 한 의 (4:1-12)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배우자 선택에서, 직업의 선택 등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은 이 땅의 삶은 물론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선택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어떤 믿음의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랑,

내 생애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아시나요?

모든 능력, 권세,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예수

세상이 상상도, 측량도 할 수 없는 지혜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

모든 나라와 모든 보좌, 이세상 모든 경이로움보다

이 세상 모든 값진 보물 보다 더욱 귀하신 예수.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고 버림받고 외면당하신 예수.

나에게 참 사랑을 가지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짓밟힌 장미꽃처럼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내 발을 씻기신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참된 삶을 보여 주셨네.

가시밭 길 걸어갔던 생애

그 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네.

죽음 앞둔 그분은 나의 발을 씻기셨다네.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그 모습 바로 내가 해야 할 소명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먼 훗날 당신 앞에 나설 때 나를 안아 주소서

 

지난 주

바울은 이신득의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설명

곧 전적으로 부패한인간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율법의 지키고, 공적을 쌓아서가 아니라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 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 원리.

 

오늘 4장은 믿음으로 이루어낸 한 의

(이신득의)의 실례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그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본문에 대표적인 두 사람 누구누구인가?

아브라함과 다윗

아브라함 :

구약의 위인들 가운데 아브라함을

능가할만한 믿음의 사람이 없다.

사 41:8 하나님께 친구라 여김을 받을 정도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

그러다보니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이루어진 의라고 생각했다.

 

아브라함에 대한 유대 전통은

1. 외경 -쥬빌리 25장 10 므낫세의 기도에

그 행위가 완전한 사람이었다고 기록

2. 랍비문헌 -세살 때부터 하나님께 헌신 시작하여

율법과 할례를 미리 행했다고 기록되기도

3. 출 24장 15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빛나는 구름”을 뜨게 한 첫 인물로

신화적 존재로 추앙하고 있다

4.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희생 드리려했던

위대한 인물로 (아브라함의 의) 알고 있고 /

그의 후손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

 

●인간측에서 보는 상대적 의

●하나님 측에서 보는 절대적인 의

아브라함은 율법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의 결과였다.

믿음의 소산 / 믿음에 의해 표출된 행위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7가지 특징

1. 행위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음(2-3)

2. 무 할례시에 의롭다 칭함을 받음 (11절)

3. 하나님의 약속 받을 만큼 의로운 믿음(13절)

4.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믿음 (18절)

5. 순탄치 못한 현실/ 약해지지 않는 믿음(19)

6.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는 믿음 (20)

7.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 (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