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 짓는 기도

한 해를 마무리 짓는 기도

(송구영신 예배 기도)

 

죽음을 앞두고는 버리지 못할게 없다지요, 끝이라고 생각하면 못 비울게 없다지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불꽃처럼, 아무 소리 없이 스러지는 유성처럼,

세월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 한 해 마지막 날에...

주여, 시한부 죽음을 준비하듯, 우리 모두 뜻 깊게 죽이게 하소서.

 

무덤에 장사 되었다 하면서도 수없이 고개 들고 일어났던 순간들로...

버렸다 하면서도 놓지 않으려고 거머쥐던 날들로...

비웠다 하면서도 가슴 한 켠에 서성이는 욕심들로 여울진 이 한 해.

 

주여, 생산치 못해 울던 라헬의 통곡처럼 우리 모두 부끄러워 슬피 울게 하소서.

함께 있을 날 얼마나 많다고, 도토리 키 재고 돋우고 으스댔는지...

같이 나눌 시간 얼마나 길다고 삐치고 켕기고 버성겼는지...

아무리 넓다 해도 가는 길 좁은데 얼마나 사랑하며 손잡았는지...

 

주님 따른다며 정신없이 달려온 이 한해 마지막 날에

주여, 우슬초 흔들어 떨며 우리 모두 회개하게 하소서.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못줄게 없다지요.

다시 못 본다 하면 풀지 못할게 없다지요.

 

달랑 한 장 가벼워진 달력을 보며 비워진 숫자처럼 마음 비웠는지...

겨울 논바닥에 드러누운 볏짚 밟으며 빳빳한 그루터기 아직 마음에 남았는지...

주여, 이 한해 마지막 달 사라져 갈 한 해를 갈무리하게 하소서.

 

주여, 이 한 해에 베푸신 사랑 너무 따습고 받은 은혜 너무 황송해

몸 둘 바 몰라 당신을 찬양합니다.

이 한 해 아무리 당신을 닮았다 해도 당신 곁에 서면 아직 우린 돌연변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당신 사랑 앞에선 아직 우린 빛도 못 내는 희미한 촛불...

 

마지막 날이 없으면 새해도 없다지요.

마지막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다지요.

 

그래도 우리에게 끝은 희망이고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당신의 용서 속에 한 해를 묻고 당신의 자비 속에 또 한 해를 시작할 수 있기에…

 

어떻게 하면 죽는 줄은 알아 어떻게든 죽고 싶어

주여 이 한해 마지막 날 장례 치르듯 주님 앞에 우리를 장사합니다.

 

쓰다만 일기처럼 부끄러운 한 해를 용서하시고

밝은 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