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칠레의 서해안은 그 경관의 아름답기가 그지없어 수많은 유람선들이 그 서해안을 세계인들의 유명지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서해안에는 암초가 많아서 배들이 파선하는 해양 사고가 빈번하다고 합니다.

 

  여러해 전, 근처 마을 사람들이 바닷가에 인명 구조 초소를 짓고 구명보트도 하나 마련했습니다. 초소는 보잘것없는 오두막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부 몇 사람이 자원하여 교대로 번을 서며 바다를 지켰습니다. 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헌신적으로 인명 구조 작업에 나섰습니다. 파선하여 죽게 된 많은 사람들이 구조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미국의 유명 배우들과 그 가족들이 탄 요트가 암초에 걸려 파선 당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들은 모두 구출되었습니다. 배우 일행은 감사의 표시로 구명 초소에 거금을 희사했습니다.

 

  “자 이 돈으로 우리 초소를 다시 짓고, 배도 성능이 좋은 것으로 삽시다.” 구조대원은 기뻐하며 새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구명 초소의 미담이 사방에 알려지자 많은 성금이 답지했습니다. 구조를 받았던 사람들이 감사의 성금을 내고, 그중 은퇴한 이들은 이 초소로 찾아와 자원 봉사 대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돈이 자꾸 모였습니다. 좋은 배를 많이 사들였습니다. 더 많은 대원을 뽑아 정식 인명 구조 훈련도 시켰습니다. 초소의 규모는 계속 확장되고 시설은 갈수록 풍부하고 화려해졌습니다.

 

  간이침대는 푹신한 고급 침대로 바뀌었습니다. 안락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비싼 가구들이 배치되었습니다. 부엌 시설이 확충되었고, 넓고 편리한 회의실을 증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둘러 앉아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설과 기구는 계속 개선되고 실내 장식도 더없이 화려해졌습니다. 구명 초소는 마치 최고급 시설을 갖춘 부자들의 사교 클럽과 같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초소가 아니라 회관이었습니다. 한 회원이 옛날 오두막 초소의 사진을 찾아내어 넓은 홀 벽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 동안 이 초소가 얼마나 눈부시게 발전했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회원들이 인명 구조에 직접 나서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전문 구조원들을 고용하여 작업을 시키게 된 것입니다. 회원들은 모여 앉으면 어느 악단을 불러서 무슨 음악을 연주하게 할까, 요리사에게 어떤 요리를 하게 할까 따위나 의논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인명 구조 회관을 상징하는 깃발도 만들어 달고, 여러 가지 문서들을 출판하여 인명 구조 사업의 중요성을 홍보했으며, 구조 보트 모양으로 디자인된 금배지를 모든 회원들이 옷깃에 꽂고 다녔습니다. 회의실 전면 벽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인명 구조 보트 모형을 걸어 놓았습니다.

 

  어느 날 또 배 한척이 파선되었습니다. 고용된 구조원들이 나가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구조된 사람들은 모두 물에 젖어서 추위에 떨고 있었고, 굶주림에 지친데다가 온몸이 흙투성이였습니다. 부상을 당해 피를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새 카펫 위에 흙탕물과 핏방울이 떨어져 번졌습니다. 회관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재산 관리 위원회가 긴급 소집되었습니다. 위원회는 옥외에 샤워 시설을 신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건물을 깨끗이 보존하기 위해 구조된 사람들이 밖에서 몸을 씻고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다음 회의에서는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회원들은 힘들고 귀찮은 인명 구조 활동은 전면 폐지하자고 했습니다. 인명 구조 활동 때문에 사교생활에 지장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회원들은 인명 구조 활동을 중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기관의 명칭이 엄연히 인명 구조 회관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회원들은 두 파로 갈라져 팽팽히 맞섰습니다. 투표를 한 결과 인명 구조 활동을 중단하자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이들은 의기양양해서 구조 활동을 계속할 사람들은 회관에서 나가라고 소리쳤습니다. 결국 인명 구조 모임은 둘로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회원의 3분의 1가량이 따로 나와서 바닷가에 오두막 구명 초소를 다시 지었습니다. 이들은 숫자도 적고 재정도 부족했습니다. 구명보트도 한 대 밖에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초소도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건물과 시설이 점점 커지고 좋아졌습니다. 몇 해 후에는 큰 회관이 되었고 인명 구조 활동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소수의 회원만이 구조 활동을 하다가 끝내 다시 갈라져서 바닷가에 작은 초소를 만들고 따로 나왔습니다.

 

  해가 가면서 이런 역사가 계속 되풀이 되었습니다. 지금 칠레의 서해안 지방에 가보면 바닷가를 따라 잘 지은 사교 회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파선 사고는 자주 일어나고 물에 빠지는 사람도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나 웅장하게 지은 사교회관 회원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실화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의 교회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전도, 곧 영혼 구원사업은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진실하고 가장 근본적인 사업입니다. 죄악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조하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눅19:10)

 

  하나교회는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어 어떤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던지 유람선이 아니라 생명 구조선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