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이희승

* 요한복음 2장 *
1. 가나의 혼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이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어, 예수님께서 주인공인 신랑이 되어 베풀어지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섯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에서는 정결예식에 쓰이는 물, 즉 율법으로 정결하게 되는 죄사함을 온전히 이룰수 없는 것을 예수님의 보혈로 온전한 죄사함이 이뤄지게 될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좋은 포도주'라 함은 예수님의 보혈로 이뤄지는 더 좋은 포도주인 새언약을 보여주시는 것이고, 또한 이 포도주를 마시므로 참여하게 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천국에서 이뤄질것에 대해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이적인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 보혈을 통해 이뤄주실 구원과 그로써 베풀어지게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해 알려 주심으로 복음에 대한 내용을 보여 주십니다.
2. 성전정화: 거룩한 성전에 오히려 세속적인 더러운 것들이 있었음은 '주'를 사모하는 열심이 주의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변질되고 비틀어졌기 때문이고 그 결과로 그들은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저주의 나무에 매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것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도, 생명의 복음에 의해 우리 또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님과 함께 그 생명으로 부활하게 해주실 '복음'에 대한 것을 알려 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3. 사람의 마음속: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은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은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기적이라는 기이한 일을 행하는 예수라는 사람에 흥미와 관심을 갖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묵상: 본문 24절에 나오는 '의탁'이라는 단어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구절과 '영접'이라는 단어로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기적과도 같은 현상이나 필요나 목적에 의해 이용하듯이 예수라는 이름을 믿을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시고 우리안에 생명을 넣어주신 생명의 주이시니 아무런 목적이나 이유없이 예수님을 우리 안에 영접해 '더불어 먹는' 실제적으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로 이 주님과 동행하는 실제적인 삶을 살게 하기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이셨다 부활 하심으로 죄인인 우리 또한 그 십자가에 함께 매여 죽게 하신후 예수님의 그 생명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십자가에 담겨진 생명의 비밀을 알려 주셨으니,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실제'가 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일곱번째 돌항아리가 채워지는, 즉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채워지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돌아오게되는 그 때에 예수님과 실제로 더불어 먹던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 사도행전 12장 *
1. 베드로의 믿음과 성도들의 기도: 주님을 사랑하고 영접해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자인 베드로는 옥에 갇혀 다음날 죽게 되었음에도 '주를 믿는 믿음안에서의 평강'으로 곤히 잠을 잡니다. 한편 교회의 형제들은 그들의 마땅히 해야할 바로써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야고보의 칼에 의한 순교후의 일이라 그들의 기도는 베드로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것이었을 테고, 무엇보다 그들은 마가의 집에 모여 베드로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던 중이었음에도, 베도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마가의 집에 도착하자 그들은 처음에는 베드로가 살아 돌아왔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헤롯이라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왕이 자신들의 형제이자 사도중의 하나인 야고보를 칼로 죽인것을 눈으로 보았기에, 그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믿음' 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2. 심판받은 세상의 임금과 흥왕하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두려워 하는것을 아시고 세상적 부와 권력을 갖은 헤롯을 사람들의 드높임과 그의 교만함이 최고조에 이를때 한낱 벌레에 먹혀 죽게 하십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갖은 세력들의 박해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과 그 복음은 더욱 더 흥하여 세상에 번져가게 하십니다.
3. 묵상: 아마도 베드로의 형제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것처럼, 우리들은 보통 기도를 드릴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눈과 생각으로 판단하기에 유익한 것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것을 간구하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리심으로 우리에게 모본이 되는 기도를 보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자이니 무시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과 함께 했었고 또 함께 하는 자로써 예수님께서 기도 하셨듯이 단지 살려달라는 기도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지기를 기도 드렸을 테고, 또한 아버지의 뜻하신바 대로 그의 기도가 이루어 질것을 믿음과, 그의 안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앎에, 그는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인 옥중에서도 밤새워 그를 위해 옥밖에서 기도하던 형제들과는 달리 주님의 평강안에서 곤히 잘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실제로 예수님과의 공생애간을 함께 함으로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알때도 있고 모르고 지나갈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영접하게 된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경을 읽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말씀을 믿어 영접하게 된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알게 해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수도 없고, 주를 그리스도라 고백할수도 없으니, 성경을 읽고 믿어 주를 그리스도라 고백한 우리에게는 부활하신 생명의 주이신 성령께서 그 옛날 베드로와 함께 하셨듯이 지금 우리와도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베드로처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는 실재를 믿음으로 자각하며 살아감으로, 내안에 계시는 주님의 뜻대로 모든것이 이뤄지기를 기도드리고, 믿음으로써, 그 주님의 평강안에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