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5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한1서 3장 9절)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경륜이 오묘하다면, 죄의 본질 또한 오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의 시작과 그 존재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수수께끼까지 되고 있습니다. 죄악의 시작은 그 존재 이유와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죄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그리고 그 죄악을 처리하시는데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으시며, 또한 그분께서 속히 죄의 역사를 바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는 “죄는 불법이라”(요일3:4)는 말씀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위대한 사랑의 율법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정신의 표현입니다. 이 세상과 인간의 마음속에 만연해 있는 죄는 보통의 힘이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그치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시는 <악한 자가---만지지도 못하는>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죄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하게 처방해 주신 방법이 있습니다.

 

죄를 그치게 하는 하나님의 처방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행과 파멸의 근원인 죄를 온 후주에서 없애버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죄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 속에 있는 죄는 멸하시면서 죄인은 구원하실 수 있을까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며, 이 일을 위해 지금도 예수님께서 불철주야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처방이 필요합니다. 죄를 그치게 하는 특별한 하나님의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 처방이 무엇일까요?

 

[1] 죄가 좋은 걸 어떡해요?

 

세상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버리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습니다. 아니,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 술이 싫어져서 금주하는 일은 쉬워도, 술을 아직도 좋아하면서 술 마시는 일을 억지로 참는다면, 금주는 그 사람에게 고역이 될 것이며 그 사람이 다시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서 하게 되는 어떤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해도, 외압에 의해서 참게 되거나 억지로 종용되어 잠깐 포기상태로 들어간다 해도, 그것은 잠시 자기의 소욕을 중단하는 것이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소욕은 결코 포기되지 않으며, 항상 마음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다시 이루고 성취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죄를 좋아하고 있다면, 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죄를 버리라고 말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죄가 좋은 걸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1) 처절한 절망

 

사람은 죄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지만,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과 죄에 연약해진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조상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그릇된 유전적 기질로 우리는 더 쉽게 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힘으로는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아무리 의롭게 살려고 한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인간은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미 7:4).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고 부르짖었습니다. 또한 그 생각은 우리로 이런 처절한 부르짖음을 하게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구원할 수 있겠는가?”

우리 자신 속에 선함이나 의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인간은 죄를 대항하기에 너무 약하여 스스로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느껴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이런 깨달음이 생길 때에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2) 죄가 가진 파워

 

죄에서 벗어나고 죄를 그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는 파워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가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인간을 지배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 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롬 6:12~13).

죄가 ‘왕 노릇을 한다’는 표현과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드린다’는 표현은, 마치 사람이 권세를 가진 어떤 자에게 꼼짝없이 굴복하고 그 권세 아래 자신을 갖다 바치듯이, 인간이 죄의 파워에 꼼짝없이 끌려 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죄는 분명히 다스리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를 좋아하고 그 죄를 그치지 못하고 그것에 끌려 다닌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죄에 종 된 상태, 곧 죄의 노예로 팔려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죄의 다스리는 파워 중에 또 한 가지, 죄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도 일시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처음의 달콤한 유혹과 쾌감 때문에 죄에 빠져서 결국에는 그 죄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죄는 마치 마약 중독과 같아서 잠깐의 쾌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게 하는데, 그 유혹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사람을 옭아매는 파워를 발휘합니다. 그래서 죄의 습관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죄는 일시적인 기쁨은 주지만 사실은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앗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죄의 결국은 사망과 파멸입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일으켜서 죄인 스스로가 하나님을 피하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내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우리 안에서 왜곡시켜 놓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품고 그 죄를 고집하여 버리지 않을 때에 우리 영혼은 서서히 좀먹어 들어가듯이 파괴되며,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죄에 물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죄가 무엇인지 알고서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죄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해서일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안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데서 오는 참된 기쁨과 만족을 안다면, 죄가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쓸데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기쁨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3) 은혜의 파워와 소망

 

그렇다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구원을 얻는 것일까? 인간은 죄의 본성을 가졌으니, 그냥 그렇게 죄짓고 용서받고 또 죄짓고 용서받는 일을 계속하다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인가? 죄는 어차피 이길 수 없고 계명을 순종할 수 없기에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인가? 아니면 죄를 그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한 어떤 방안을 마련해 놓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죄의 파워와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셨는데, 그것은 죄보다 강력한 파워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의 파워가 죄의 파워를 이기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4).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십니다.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1).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죄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파워로 죄를 이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죄의 권세 아래 매일 끌려 다녀도 은혜로 다 덮어주셔서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가르침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5).

성경은 은혜로 죄를 다스리고 죄를 이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죄를 승리하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의 파워를 벗어나 죄를 그칠 수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