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이희승

* 요한복음 21장 *

 

1. 에수님께서 일곱제자에게 나타나심

- 예수님께서 부활후 두번이나 모여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었으나, 베드로를 포함한 일곱명의 제자들이 베드로의 말을 따라 갈리리 디베랴 호수에 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그 날 밤에’한 고기잡이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 이때 그들은 주님께서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26:32)’고 말씀하셨던대로 그곳 갈릴리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그 새벽 미명과 함께 주님이 등장하셨으나,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의 일을 하던 그들은 아직 주님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곧 주님께서 당신의 뜻(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을 말씀하여 주시자, 주님의 뜻대로 행한 제자들은 물고기를 많이 잡게되고, 비로소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보고(주님이시라), 주님께 자신을 던져 나아갑니다(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 주님께로 나아온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직접 준비해 놓으신 생선과 떡이라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보여주셨던 양식(생명의 떡)을 제자들에게 손수 주셔서 먹게 하십니다.

- 마치 일곱교회와도 같이 일곱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주님의 교회인 모든 성도들에게도 이처럼 직접 찾아 오시어,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해야할 바를 알려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 또한 직접 주심을, 이 일곱제자들에게 나타나신일을 통해 보여주심으로 알려주십니다.

 

2.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회복 시키심

- 제자들에게 양식을 먹이신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한가지 질문을 세번에 걸쳐 하십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베드로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는 세번의 대답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Feed my lams, 내 양을 치라 Take care of my sheep, 내 양을 먹이라 Feed my sheep’고 말씀하십니다.

- 세번이라는 충분한 질문과 대답을 통해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자신이 주님을 사랑함과, 주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기에 자신이 주님을 사랑함을 주님께서 아신다는 확신과, 그로인해 주님의 사랑안에서 주님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 있음을 ‘알게’하십니다.

- 무엇보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하라고 하시며, ‘나를 따르라 Follow me’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임무를 맡기고 그 일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완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인 일을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니, 주님을 따르며, 주시는 말씀대로 행하고(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주시는 양식으로 필요한것을 채우며(예수께서 떡과 생선을 가져다 그들에게 주시고), 주님의 양들이자 믿음안의 형제들이될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어 지는데 쓰임을 받으라는 말씀이십니다.   

-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베드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을 맞게 될것을, 즉 예수님께서 자신의 주님이 되심으로 성령에 매여, 주님의 사랑에 매여, 하나님의 뜻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쓰임을 받게 될것임을 말씀하십니다.  

 

* 묵상 *

 

- 주님께서는 공생애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랑’은 인간 스스로는 할수가 없는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자체에게는 애당초 이 ‘사랑’이 있지를 않기 때문에, 신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할수도 그리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할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셔서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하신 질문은, 단순히 베드로의 예수님께대한 감정만을 물어보신것이 아닙니다.이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와 ‘사랑’을 주시고 그 사랑으로 사랑을 고백하게 하신것입니다.

- 마태복음에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때 그 종들을 불러…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라는 비유가 나옵니다. 종들에게 애당초 그들 스스로의 달란트는 없었습니다. 다만 주인이 준 달란트로 달란트를 더 늘려서 주인에게 보여드리고, 이를 본 주인은 충성된 종에게 많은것을 맡기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해 더욱 풍족하게 해줍니다. 여기에서 달란트는 몇개의 달란트인가 하는 숫자와는 상관없이 그냥 달란트를 말하는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달란트가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구원, 생명, 영생, 복음, 믿음,소망, 은혜 등등’의 여러가지 말로 표현이 되기도 하는데 이 모두가 바로 ‘사랑’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이 사랑이 바로 내 안의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므로 이 ‘사랑’을 받게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사랑고백을 하여 주님과 하나가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것처럼, 주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도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daily and follow me’고 말씀하신것에서 그 따라오는 방법을 단적으로 설명해 알게해 주십니다. 즉 매일 십자가에 자신을 매여 죽이고,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을 받아 삶으로써, 생명의 주이신 주 예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 베드로에게 그리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와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그 사랑을 고백하면, 그때부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주님과의 영원한 동행이 시작됩니다. 그 동행은 하나님의 사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함께하시는 동행입니다. 한번의 주님의 사랑고백을 받았던 기억만으로, 처음 느꼈던 구원의 감격만으로, 성령세례에 의해 느꼈던 성령이 임하셨던 한순간의 기억만으로는, 여전히 죄성의 육신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온전한 구원’을 완성시킬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해야 할것은, 우리 안의 주님께서는 생명수의 근원이 되어 그 생명을, 사랑을, 끊이없이 우리 안에서 분출해 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비록 아직은 죄성으로 썩을 육신을 갖고 살아감에도, 그 계속해서 뿜어내 주시는 사랑과 생명으로, 하나님께대해 생명과 사랑이 있는자로 살아갈수 있게하십니다.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것을 우리의 삶에서 나타내는것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것입니다.  

- 그래서 바울은 ‘빛으로 오신 주님’으로인해, 자신이 주님의 생명으로 날마다 살아가는것을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로 즐겁게 혹은 자랑스럽게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사랑이라는 생명을 뿜어내 주시니, 우리는 매 순간을 죽음으로써 진정 살아있는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