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장 7-23절 이 희승

*본문 :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의 지휘로 이스라엘의 성벽재건이 시작되자 신발랏과 도비야, 아라비아인들, 암몬인들, 아스돗인들이 그 성벽재건작업을 방해하려 기습작전을 펴 그들을 죽이려 합니다.  게다가 한편인 유다인들은 지쳐서 더이상 일을할수 없으니 성벽재건을 이루지 못할것이라 자포자기하고, 대적들 주변에 사는 유다인들도 10번이나 그곳에 찾아와 그 대적들이 성벽재건을 하는 유대인들 모두를 칠것이라 말합니다.  이러한 실제적인 위험과, 내부의 사기저하와, 자포자기로 성벽재건이 힘들어지자 느헤미야는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 그 모든 대적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철저히 무장시켜 성벽재건 현장을 지키게 합니다.  대적들의 계략이 발각이 되고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궤휼을 폐하심에 그들은 더욱 성벽재건작업에 전념을 할수있게 됩니다.  그들은 밤새 성벽주위를 철통경비하고 낮에는 전심을 다해 무장을 한체로 성벽재건작업에 몰두합니다.  또한 항상 예루살렘성안에 머물며 나팔소리가 나면 즉각 전투에 임하기 위해 옷도 벗지않고 항상 칼을 잡고 전투태세에 임한채 성벽재건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이 그 대적들의 위협에 무서워하고 힘든환경에 자포자기할때 '우리 하나님' 께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그 대적들을 두려워 하지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니 오직 크고 두려우신 주를 믿고 싸우자고 합니다.  즉 느헤미야와 사람들은 기도와, 믿음과, 항상 대적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자세로 성전재건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 :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 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며, 그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 예루살렘성전 이었듯이,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인 '성전' 은 바로 '예수님을 머리로 둔 교회인 우리 그 자체' 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인들은 그 대적들의 침략과 노략을 당하며 종살이를 하면서도 성벽을 쌓아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듯이 지금의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우리를 성전으로써,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로써 거룩하게 만들고 지켜가며 살아야 합니다.

 

*성전건축의 방해요소들 :  이스라엘이 성전재건을 할때에 그 대적들이 방해를 하고, 내부에서 갈등아닌 갈등이 생겨 자포자기한 동료들이 생기며, 당시 그들이 처한 열악하고 힘든상황등 몇몇의 방해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각자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위해,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집인 교회가 되기위해 자신을 건축하며 살아가는 데에도 또한 방해요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대적들의 침략을 받아왔던 것과같이 우리또한 이 땅위에 발딛고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우리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우리를 침범해 옵니다.  사람들은 사회와 집단에 소속되어 살아가기에 하나님의 일과 말씀보다는 그 속한 세상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 그것에 목이매여 하나님의 성전으로써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기 보다는 그 세상에 휩쓸려 그것에 속해 살아가는 것에 쉽게 안주하게 됩니다.

느헤미야 당시의 대적들은 그들 앞에서 그들의 미약함과, 무능함과, 열악한 환경적 사실을 들춰가며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때론 무력으로 그들이 하는일을 멈추게 하려고 겁을 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일부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편리대로 만든 사회통념과 제도를 우리에게 들이대며 그 사회라는 커다란 덩어리 앞에서 우리 개개인이 작은 존재임을 각성시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신념이, 삶의방식이 그 사회와 다를지라도 그 사회의 소속원으로써 그 사회라는 덩어리에 합쳐져 한덩어리가 되지 않으면 그 개인은 도퇴되고 그 사회에서 소멸되어질 것이라는 위압감과 위기감을 갖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또한 당시의 유다인들은 아직도 일할것이 많은데 힘은 빠지니 자신들이 이 성전을 재건하지 못할것이라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또한 대적들의 근처에 사는 유다인들도 그 모든곳으로 부터 적들이 우리를 공격할거라 지레 걱정을 합니다.  이 땅위에서 먹고 살아가기 위해 사회제도가 주는 억압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구별되어 거룩하게 하나님의 성전으로써 살아가는데 방해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또다른 방해요소, 즉 적은 내 안에도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들 살기 위해서니 어쩔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세상에 매여 살아가는 자신을 위로할 때가 많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떠한 일을 결정하고 실행할때 하나님의 눈으로 그 일을 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그것을 생각하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일을 결정하고 행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듯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 모든일을 정하고, 자기 스스로의 판단과 노력으로 모든일을 행하고 이뤄낸다고 생각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사회라는 세상이 만들어 정해놓은 목적과 방향과 결과를 향해 그들이 우리를 달려가게 만드는 것이고, 그 세상이 만든 트랙안에서 그들이 우리의 고삐를 쥐고 트는데로 우리는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알면서도,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것 이라고 자포자기 하고 그 만들어 놓은 거짓된 길을 살아가며 또한 한편으로는 그래도 세상의 흐름대로 열심히 일하며 노력하며 살아간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갑니다.

*성전건축 재료 :  당시 이스라엘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종살이 생활을 하며 그 불탄성전을 재건할 엄두고 못내고 있을때 하나님은 택하신자인 느헤미야를 그곳에 보내 사람들의 마음을 단결하게해 성전을 건축하게 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누군가는 성전이 꾸준히 지어지고 있는 상태일수고 있고, 혹은 이제막 터만 닦여진 상태일 수도 있고, 혹은 성전이 무너진 상태에서 멈춰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라는 터가 닦여져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아닌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일깨워 주시며, 성전으로써 지어져 가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느헤미야와 이스라엘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축 되어지기 위해서는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일꾼으로써, 군사로써 무장을 해야 하겠습니다.  사회적 요건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든, 내 안에서 나오는 자포자기이든, 가족들간의 불화때문이든 그 모든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축되어 지는데 있어서 영적으로 싸워야할 적들인 것입니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는다 했으니 우리는 늘 쉬지말고 깨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한편으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태세를 갖추고 긴장을 풀지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검 곧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무장을 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느헤미야와 그 일족들이 옷을 벗지않고 항시 무기를 들고 밤낮으로 준비태세에 임한채 기도를 드리며 성을 쌓았듯이, 우리도 성령안에서 늘 깨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와함께 항상 자신을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해야함은, 그 기도와 전신갑주가 우는 사자같은 대적들과 대적하기 위한 무장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위에 세워질 성벽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구원, 말씀으로 지어진 성벽만이 그 이스라엘 성전과 같이 불타지않고 불의 시험에도 남아 있을수 있는 것이고, 그것으로 지어진 성전만이 견고하고 튼튼하여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아가게 할수있을 것이고, 그러한 거룩한 성벽으로 지어진 교회만이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성령께서 거하실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