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장 2부 전성권

● 4장 5-12 제사장 및 장로들의 심문과 베드로의 대답(변론)

베드로의 산헤드림 공의회와의 변론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 어떠한 위치에 있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하려는가 하는 것을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4:5 산헤드린 공의회는 7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유대인들의 최고 재판기관으로 유대인 자체의 종교문제는 물론이고 민사 문제도 도맡아 처결하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로마의 통치아래 있었기에 사형권만 행사할 수 없었고 유대총독의 판결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4:6 대제사장 안나스 는 AD 6-15년에 대제사장직에 있던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 현직 대제사장은 아니었지만 9년에 걸친 대제사장직으로 인해 그에게는 "최고 제사장"이란 호칭이 주어졌을 뿐만아니라 퇴임 후에도 그의 가문 사람 중 일곱 명이 계속 대제사장직을 독점함으로써 이스라엘 내에서 최고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입니다. 가야바는 AD 18-36년까지 18년간이나 계속 재임한 안나스의 사위였습니다. 예수님의 처형은 바로 그 때 이루어졌습니다. (요18:13-24)

참고할 성경은 누가복음 3장 2절,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2)

 

4:6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하여... 이는 당시 제사장들을 위시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을 위시한 종교지도자들의 관심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자신들이 앞장서서 죽인 예수님의 영향이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을 제자들의 사역 속에서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지만 배후조종자의 목적이 오로지 제자들의 복음전파의 영향력에 대하여 예사롭게 대처해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공동 대처의 필요성에 따라 함께 모였을 것입니다.

 

2. 종교지도자들의 심문 내용(3:7)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치유한 근거와 방법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찍이 예수님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마21:23-27)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사도들이 행한 능력의 수단과 방법을 귀신을 힘입어 한 것으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항 것이라면 이단자로 정죄당한 자의 교설을 퍼뜨리는 자로 사도들을 몰기위한 수법이었습니다.

 

3. 베드로의 변론(3:8-12)

베드로는 시편 말씀 118:22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구주되심과 메시야되심을 담대하게 전하였고, 시편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당시의 유대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구절이고 예수님도 이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이 메시야되심을 드러내신 일도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건ㅇ축자들이 쓸모없는 돌이라고 버린 돌처럼 유대인들에 의해 멸시받고 죽임을 당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살리셔서 하늘에 올리워 우편에 두시고 구원의 문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의 머릿돌과 기초돌을 삼으셔서 그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특권을 주셨으며 그를 버린 자들에게는 거침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롬9: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고전2:6-9)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4:8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베드로의 담대한 모습을 객관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어린 계집 종 앞에서도 예수의 제자인 것을 부인했던 것과는 실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은 성령으로 충만함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말은 비상하고 급박한 순간에 특별한 성령의 권능을 덧입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의 경우를 그 좋은 예로 들 수 있습니다.행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다시 말해서 베드로는 성령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죄지우지할 수 있는 산헤드림의 절묘한 질문에 능히 대항하고 변증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받고 담대히 말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6장5절에 거듭난 성도가 자기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의미로서의 "성령 충만"과는 구별됩니다.

하여튼 베드로의 변화되는 신앙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순간적 덧입힘음 받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덕분에 복음을 막으려는 종교지도자들 바람에 오히려 베드로는 이러한 위기를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성도들도 어떠한 상황 속에 처한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두려워 말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선용해야 합니다.

 

또한가지 베드로가 증언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막으려는 중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의 통로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행 10:43 ; 16:31)

4: 12절 실로 다른 이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하나님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바 없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약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진리는 공격을 받아왔고 <예수 이름으로만>을 증거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