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이 희승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한 치유
-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에 앉아있는 날때부터 못걷는 사람을 주목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세상적인 은과 금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말하며 그를 붙잡아 일으킵니다. 이에 그 앉은뱅이는 걷기도 뛰기도 하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를 본 모든 백성이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랍니다.
- 베드로가 말한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란 베드로와 그 120문도에게 임하신 성령의 권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본문의 16절과 연결이 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그 불구자를 낫게 하였다 합니다. 즉 베드로의 능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에게 임하신 성령의 권능으로 이 불구자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 이 치유사건은 선천적 불구자가 예수님의 이름의 권능으로 치유를 받은 사건임과 동시에 예수님의 이름인 성령의 권능으로 영적 불구자가 치유를 받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미문'은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통하는 문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므로 그 미문앞에 앉아있던 불구자의 모습은 마치 아직 예수님을 영접치 못했기에 구원을 못받은, 그래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므로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영적 불구자의 모습을 나타내는듯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못받았기에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이방인의 뜰에서 미문이라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자 신부가 되기위해 여인의 뜰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 또한 이 치유사건은 요한복음 9장에서 날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실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이적을 보고 모여든 이들에게 베드로는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세상의 구원을, 예수님이라는 복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2. 솔로몬 행각에서의 설교
- 베드로는 놀라며 몰려든 사람들에게 이 불구자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음'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1)그들이 생명의 주이자 하나님의 종인 예수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음과 (2)너희들이 알지못하고 그러한 죄를 저질렀으되 하나님께서는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이 모든일을 이미 말씀하셨음과 (3)그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주로부터 구원을 받은자로 새로 태어나야 할것을 말합니다.
- 베드로는 이어서 구약의 말씀을 증거로, 예수님께서 만물이 회복될때까지 하늘에 계시다 오실것과, 모세가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실텐데 누구든지 그의 말을 듣지 않는자는 멸망할것과, 사무엘때부터 모든 선지자들이 이날들을 미리 말했으며,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언약인 '너의 씨로 말미암아 받을 복'이 바로 예수님 이시며, 하나님께서 그 예수님을 통해 그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게 하셨음을 말합니다.

* 묵상 *
- 요한복음에서 아직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날때부터 맹인인 자를 고치셨고, 그 이적을 본 바리새인들의 물음에 그 맹인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 대답하고 출교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후 수전절때인 겨울에 예수님께서 솔로몬 행각을 거니실때 유대인들은 그 이적들을 봤음에도 예수님을 에워싸고 '당신이 그리스도인지를 밝히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하시고, 이 대답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기에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어,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날때부터 앉은뱅이인 자를 고치고, 그 고침을 받은자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오순절때인 봄에 솔로몬 행각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생명의 주이심과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음을 증언하고, 이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중 오천명이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는자들이 됩니다. 이렇듯 성령께서 세상에 임하시기 전후라는 이유로 같은배경 같은사건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 당시 제사장이나 율법학자도 아닌 죄인의 신분이었던 불구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고 그 이름으로 치유된것을 믿음에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였으면서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폭발하듯 시작이 됩니다. 또한 당사자인 예수님이 계셨을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않고 돌로쳐 죽이려 하던 이들이 정작 예수님께서 승천 하신후 그 제자인 베드로가 하는 말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낮은 신분을 갖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고, 그 말씀으로 지으신 인간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매여 돌아가셨으며, 이것을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신것'이라 표현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경륜이 일견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될수 없는 방법들로 보이는 것은 전체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과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작은것으로 시작해 전체로 번져감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방법이고, 그것은 또한 가장 중심 으로부터 시작되 전체가 온전히 변하는 변화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구약에서 처럼 하나의 선지자나, 사사나, 왕을 통해서는 사람들이 일시적 이나마 그 겉모습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는 있었지만 그 하나 하나가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벌을 피하기 위해서나 쫓겨나지 않기 위해 두려움만으로 율법을 지켰기에 진정한 회개를 할수가 없었고 그로인해 그 중심에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살아갈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가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하셨듯이, 이 세상사람들이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직접 세상에 작은자로 오셨고, 또한 세상의 작은자, 낮은자, 죄인, 일반 백성을 써서 그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가 되어 번져나가게 하셨으며, 무엇보다 늘 그곳과 그들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심'으로 보내주신 성령께서 함께하시며 그 일들을 주관하시고 역사 하셨기에 그 한사람 한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마음에 담을 수가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할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