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장 이희승

* 요한복음 19장 *

전장 (18장)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리라’말씀하신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19장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으로 보여 주시며 알려 주십니다.

 

1. 보라 이 사람이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본장에서 왕이시며, 희생양이라는 제물이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가시면류관과 자색옷은 왕의 권위를 인간들이 조롱함으로 나타낸것임과 동시에, 또한 가시관은 고난을, 자색옷은 진홍같이 붉은 인간의 죄를 나타냅니다. 이렇게 가시면류관과 자색옷은 예수님의 왕이라는 신분을 나타냄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난과 붉은죄를 자신의 몸에 전가받아 희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 오신 대속제물이심을 나타냅니다.

- 우슬초, 물과 피 : 우슬초는 환자를 정결하게 하는 규례와, 부정함을 없애는 정결수를 만들때 사용되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으며, 또한 다윗이 자신의 죄사함을 구하는 시에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라 표현하는데 나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모세가 제물의 피와 물을 양털과 우슬초로 온 백성과 두루마리에 뿌리며 ‘하나님의 언약의 피’임을 선포하고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필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정결히 하기위한 대속제물인 희생양으로 오시어 그 피와 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생명이라는 새로운 언약을 주십니다.

-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을 받는 희생양이 되심은, 시 22편의 다윗이 노래한 ‘메시야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승리를 예언한 시’에 나온것과,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아침까지 모두먹되 ‘그 뼈를 하나도 껵지말것’이라는 규례를 통해 이미 예언, 예표되어 있었으며, 이 성경의 말씀이 ‘예수님의 십자가’사역으로 모두 실제화 된것이 나옵니다. 

 

2. 보라 너희 왕이로다 (다 이루었다).

- ‘진리에 대해 증언하러 세상에 오신 왕’이라 말씀하신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구원의 복음을 완성하시어 하나님의 뜻이라는 진리를 증거 증언하십니다.

- ‘이 일이 일어난 것은…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은 스가랴서의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the Spirit of grace and supplication)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는 말씀을 인용한것 입니다. 이 스가랴서의 예언의 말씀이 응함으로 이루어졌다는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이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즉 모든것을 다 이루시어 그 증거로 성령을 보내주시어, 이제 주님의 양들은 그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진리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이자 선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를 통한 죄사함과 구원과 새로운 생명이라는 영생을 알고 믿고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 이렇듯 예수님께서 희생양이 되어 다 이루심으로 전장에서 말씀하신 ‘내가 왕이니라…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속죄제이자 화목제의 희생양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보내주신 성령으로인해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을 받아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생명을 받아 새롭게 태어났으니 당연히 주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시어 주인으로써 우리를 주관하시게 되고, 이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 묵상 *

- 전장에 이어 본장에서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판자, 믿고 따르다 도망을 간자들, 예수님을 부인한자, 이방인으로써 자신이 알지도 못하던 유대인의 왕을 살리려 했으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 포기한자, 십자가에 매달고 조롱한자들, 마치 이방신을 섬기듯 이방인의 왕을 자신들의 유일한 왕이라하며 정작 자신들의 신이자 왕을 죽이라고 외치는 자들등등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죽인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자리에 있진 않았지만 우리도 모두 예수님을 죽인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그 때 그곳에 있던 자들과 같은 성향과 본성을 가진자들로, 그때의 그 상황에 있었다면 그들과 똑같았을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죄인들입니다. 이 부분 까지만을 봤을때 하나님을 죽인 사람들에게 더이상의 소망 따위는 있을수 없습니다.

- 그러나 이 소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형틀인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빛과 같은 생명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에서는 ‘다 이루었다’는 말로 나오지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신 당신을 죽이는 죄인들앞에서 이 말씀을 하심으로 그 소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주십니다. 시 22편의 1절을 인용하신 이 말씀은 단지 다윗이 부른 시22편의 1절만을 인용하여 말씀하신것이 아니라 그 시 22편의 전장, 특히나 21절부터 31절까지의 내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완성하신 이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선포되고, 구원의 복음이 완성되고 전해져, 하나님의 것인 우리들이 본래대로 하나님의 것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의 앞에서 예배를 하며, 우리의 마음이 영원히 살게된다는 이 모든것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에 함축해서 말씀하십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 모든것을 이루신 증거로 보내주신 성령으로 인해, 들을귀 있는 주님의 양들인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하신 이 마지막 말씀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당시 십자가밑에 있던자들이나, 예수님을 믿어 영접하기전의 우리들에게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위에서의 말씀은, 자칫 인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과 두려움에 의해 외치는 소리로만 들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알게되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그 마지막 말씀이 각자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귀먹고 말 더듬던자가 예수님의 ‘에바다’라 하신 말씀으로 그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것이 풀려 말이 분명하여진것과도 같아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이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들리게되고, 우리는 그‘사랑이라는 죄사함과 구원과 생명’을 받아, 분명해진 말로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 고백할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