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이 희승

1.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님

- 11장에서 나와듯이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믿음으로 살아간 증인들인 믿음의 선진들이 있으니, 우리는 그들이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다리던 예수님이 오시어 모든것을 이루셨으니,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인내하여 하나님의 경륜에 의한 이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 이시며 동시에 그 믿음의 온전한 완성자 이십니다. 그러니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우리들이 믿어야할 믿음은, 그 믿음의 주체이시고 자체이신 예수님을 믿어 영접해 내 안에 그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으로 인한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그리하여 고난을 받으시되 눈에 보이는 고난 보다는 하나님과 그 뜻을 바라보고, 알고, 따름으로 모든것을 이겨내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예수님께서 그 모든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겨 내셨듯이 우리가 세상의 고난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2. 연단을 위한 징계

- 이 징계의 원어는 교육, 훈련을 뜻하며, 양육하기 위한 징계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본문에서의 징계는 인간세상에서 죄지은 자들에게나 나에게 대적하는 자들에게 죄의 판결로써 혹은 미움의 결과로써 내리는 '벌'이라는 의미의 징계가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는 받아들이신 사랑하는 아들에게 징계의 채짹질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의 거룩함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시기 위함이고, 그 연단을 받음으로 우리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된 우리들을 온전한 상속을 받을 아들들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징계의 채찍질이 우리가 사생자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받는 징표임을 알고, 지치고 힘들지라도 이 연단의 과정을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내하고 받아내어 이겨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님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하십니다. 거룩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연결이 될수 없습니다. 사람이 거룩해 질수있는 길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사랑으로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계실 때에만 우리가 예수님의 그 의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 들여져,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구분이 되어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때 우리는 그 온전한 사랑으로 하나님과의 화평함과 형제들과의 화평함을 이룰수 있는 것입니다.

- 구약시대에 율법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불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같은 무서운 하나님이셨고, 또한 그 말씀인 율법을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죽음만이 있던 시대 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보혈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들이된 우리에게 있어서의 하나님은 더 이상 '만질수 있는' 무서운 율법이라는 제도로써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직접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넣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새 생명을 주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있다고 하셨고,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예수님을 믿어 영접해 예수님과 하나가된 우리들 또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이시며,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 피로 인해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인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하게된 의인의 영들이 있는곳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되었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4. 경고

-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님을 받아 우리는 이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하늘의 도성에 닿게 되어 화평과 거룩함으로 살아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은혜를 받았음에도 주님을 배신하고, 거부하고, 배교와, 우상숭배와, 뒤로 돌아가려는 짓을해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면 더 이상의 속죄제는 없으므로 그들에게 더 이상의 회개의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거나 잃어버린 자들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세상 마지막 심판의 날 세상을 흔들어 그 모든 흔들리는 것들을 없애 버리실때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으로써 그들을 모두 태워 버리실 것입니다.

-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이시자 온전한 믿음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 마음안에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을 흔들리지 않게 굳게 지켜내어, 그 마지막 땅과 하늘이 진동할 그 때가 우리에게는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완성의 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묵상 

*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백합니다. 

- 누구나 예수님을 믿음을 고백하고, 열심히 예수님을 믿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하나님을 위한 일을 찾아 열심히 할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곧잘 잊어 버리거나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봉사를 할지라도 정작 자신의 일상생활 중에서 자신의 옛 사람이 이미 죽었음을 망각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어려움과 육신의 고통 혹은 마음의 병으로 괴로울때, 즉 징계라는 연단의 과정중 힘들때 우리는 주님을 찾지만, 잠시라도 방심을 하면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옛 사람이 이미 죽었음을 망각하고, 자신의 생각과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다가 근심, 걱정, 좌절, 분냄이라는 세상적 올무에 걸려 본문의 말씀대로 주님과 세상 사이에서 저는 다리로 절룩거리게 될때가 있습니다. 

- 흔히들 이러한 근심, 걱정, 분노, 좌절등이 생기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것처럼 치부되는 경우가 있기에, 간혹 사람들은 그러한 감정들을 자신의 의지로 혹은 자기최면으로 누르며 거룩한척 평온한척 연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육신이라는 가시가 있기에 그러한 것들이 생길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에서도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주님만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즉 내 스스로의 힘이나 내가 나의 믿음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내가 아닌 내 안에 살아계시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으로 하신다'는 믿음으로 세상에서의 징계라는 연단의 과정을 이겨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하늘의 삼층천에도 올라가보고 그래서 자신의 옛 사람이 죽은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살아갔던 바울도 날마다 살아나려 하는 자신의 옛 사람을 죽이며, 자신을 치며 살아갔습니다. 즉 힘이들수록 세상에서 눈을 돌려 더욱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간 것입니다.

- 그러니 어떠한 순간 일지라도 우리의 눈동자를 주님께 고정을 시켜서 우리가 갖을수 있는 세상적인 근심, 걱정, 고통등이 찰나의 것이 되게 해야합니다. 육신이라는 가시와 세상이라는 올무가 만나서 우리를 절름발이로 만들거나 사망이라는 세상으로 돌아가게 만들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눈을 계속 주님께 고정시켜 살아감으로 우리의 생명이신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징계라는 이름의 연단으로 인한 괴로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내 안에 계신 주님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 금방 접을 붙힌 가지는 바로 열매를 맺을수 없습니다. 접불힐 나무의 몸통에 새 가지를 접붙히고, 그것을 튼튼하게 묶어 고정시킨 수, 일정 시간과 계절이 지나야 비로소 그 새 가지는 열매를 맺을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접붙혀져 성령으로 튼튼히 묶여 고정되어진 새 가지이니, 그 필요에 의해 혹독한 겨울 혹은 뜨거운 여름의 시기를 지나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새 가지인 우리가 할것은 본 몸통이신 예수님에게서 영양분을 받고, 성령께서 매어 주시는 줄에 의지해, 필요한 만큼의 시간과 계절이라는 연단의 과정을 믿음이라는 인내로써 견디어내어, 몸통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맺어지는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