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이희승

* 요한복음 11장 *

 

* 예수님께서는 죽은지 나흘째 되어 이미 동굴에 장사되어있던 나사로를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부르심으로 다시 살려 내십니다. *

 

1.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 이적은 가깝게는 곧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예표합니다. 곧 있을 유월절절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이시어 죽음을 맛보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임을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사건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 그리고 이 사건은 또한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구원의 복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여 장사되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고 승천하심으로써 구원의 복음이 완성이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을 받음으로써 살아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고, 이로써 주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심을 말합니다.

- 인간은 모두 나사로 처럼 어두운 동굴이라는 암흑같은 세상속에서, 모든 세상적인것들에 수족이 동여지고 눈앞이 가려져, 움직이지 못하고 앞을 볼수없는 상태에 놓여져 있습니다. 게다가 동굴을 막고있던 딱딱한 돌과 같은 굳은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놓아 하나님과 철저히 단절된 사망의 상태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이란, 본문의 사건과 같이 그렇게 동굴안의 시체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오직 주님의 부르심에 의해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이 자기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면, 주님의 양들은 그 목소리를 알아들으니 그 사망의 음침한 굴에서 나오게 되고, 또한 주님의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는 진리의 말씀으로 그 모든 매이고 가려졌던 것에서 풀려난 양들은 생명을 받아 사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2. 인자이신 예수님

- 본문에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 장면에서 the Son of Man 이시자 the Son of God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히 보입니다.

- 우리를 위한 희생양이자 대 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예수님은 온전한 인자 the Son of Man으로 세상에 오시어 육신을 갖은 인간이 겪는 모든 질고를 똑같이 겪으셨기에,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프고 괴로워 하는것을 공감하심으로 비통히 여기사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태초에 생명의 빛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는 또한 인자 the Son of God으로써, 자신의 피조물이자 자신의 양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죽음이라는 사망에 매여 그것에 휘둘려 살아가는것을 보시고 피조물인 사람에대한 하나님의 긍휼로써 눈물을 보이신 것이기도 합니다.

* 묵상 *

-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세남매가 본문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집에 영접하곤 했던 마르다도, 그리고 그 언니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기에 손님접대도 하지않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 진리의 말씀만을 듣곤하던 마리아 조차도 오라비의 죽음 앞에선 믿음이 작은자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두 자매의 첫마디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자신들의 오라비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육신의 죽음 앞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나 영광보다는 당장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해주지 않으신 주님을 원망하게 되는것이 모든 나약한 육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반응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영접한 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반응, 즉 스스로 자신에게 유익한것을 판단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갖게되는 원망은 일시적인 첫반응이 될수는 있으나 늘상의 반응이 될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와 같이 함께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알지못해 두려워하는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이루시는 일들’임을 알려주시고, 알게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 구원의 감격을 느껴본 사람들은, 그래서 주님과 동행하며 잠잠히 그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공포는, 세상살이에서 오는 걱정과 두려움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생명의 빛이신 주님이 함께 계시지 않음으로 인해 다시 그 어두웠던 사망의 상태로 돌아가는, 즉 하나님과 단절이 되는일 일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그 나사로와 같이 동굴속 묘지안에서 죽음의 잠을자고 있던 자들이었기에, 하나님과 단절된상태이자 생명의 빛이신 주님이 없던때의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바꿔말하면 그 어떤 크고 힘든일도 내안에 계신 나의 생명의 빛이신 주님보다 더 큰것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 육신을 갖고있기에 이 세상이라는 곳에 한쪽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아픔과 고통과 공포로 인해 주님께 볼멘소리를 할수도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주님께서는 혼내거나 윽박지르거나 벌을주는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유대인들 앞에서 그러셨던것과도 꼭같은 그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그리고는 그 모든 힘든 환난의 순간과 연단의 과정을 우리와 함께 겪으시므로 우리를 살아갈수 있게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어 영접한 예수님은, 우리안에 들어와 실제로 우리와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시는 우리의 생명이되시는 것입니다.